사람 공부의 시작은 심리학부터!
타인은커녕 자기 자신도 이해가 안 되어 고달픈 사람,
심리학 스킬들을 매뉴얼처럼 외워도 삶이 나아지지 않은 사람,
방대한 심리학 공부를 하기가 두려운 사람을 위한
제대로 된 심리학 공부
간단한 심리테스트로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을까? 타인과의 관계가 좋아질 수 있을까? 사는 게 좀 나아질 수 있을까? 심리학은 먼저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한다. 가면 속 민낯을 마주하게 한다. 그 마주함 위에서만이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으므로. 나와 같이 ‘마음’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 존재에 대해 따뜻하게 돌아볼 수 있으므로. 그럼으로써 비로소 나와 타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스파크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심리학에 대한 욕망은 결국 행복에 대한 욕망이다. 이 불완전한 존재들이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삶속에서, 심리학을 안다는 것은 행복을 찾아내는 열쇠 하나를 쥐고 있는 것과 같다. 이 책을 통해 당신의 삶이 두려움이 아니라 행복으로 자리했으면 좋겠다.
자기 이해와 치유, 관계, 가족, 사랑, 일 등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심리학 공부가 필요하다!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 질문에 순진무구하게 “예”라고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울한 사회에서 타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괴로운 삶에는 행복이 끼어들기 어렵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타인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절실히 알고 싶어진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사람 공부가 필수다. 그리고 사람 공부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심리학 공부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심리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온갖 분야에 심리학을 붙여 기술로써 연마하고자 한다. 하지만 심리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히 심리학 이론과 인간을 연결한 기술만 배워서 써먹으려 하다 보면 결국 가짜 ‘나’와 만나는 씁쓸함과 부딪히게 된다. 단순한 심리학 기술은 모든 사람과 상황을 하나로 묶어버리고, 진심을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심리학이라는 과학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사람들이 왜 같은 상황에서 다른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깊이 다가갈 때 비로소 자기 이해, 관계 회복,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 그래서 행복을 위한 심리학 공부는 어설픈 사용설명서로써가 아니라 기초부터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책 속으로
정말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려 있을까요? 이 말은 노력이나 준비도 없이 “난 무조건 성공할 거야.”를 주문처럼 외우면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겠죠. 하지만 실패를 겪은 사람이 “난 정말 안 되는 사람인가 봐.”라고 생각하는 것과, “이번 실패를 통해 좋은 교훈을 얻었어. 다시 도전할 때는 이 부분을 고려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바로 인지치료의 핵심 가정입니다. 다음처럼 요약할 수 있습니다.
A(activating event) → B(belief) → C(consequence)
사람들은 보통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A) 때문에 우울이나 불안 같은 심리적 결과(C)가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시험에 떨어졌기 때문에 우울하고, 사업에 실패했기 때문에 자신을 비난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기 때문에 죽고 싶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인지치료자들은 심리적 고통(C)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말합니다. 당연히 일어난 사건(A)도 원인입니다. 그런 사건이 없었다면 결과(C)도 없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보다 더 직접적인 원인은 생각(B)입니다. 사건이 간접적 원인이라면, 생각은 직접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험 때문에 우울하다면 ‘나는 시험을 꼭 잘 봐야 해, 시험에 떨어지면 내 인생도 끝이야’라는 생각이, 사업 때문에 자신을 비난한다면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비난받아 마땅해’라는 생각이,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죽고 싶다면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은 살 이유가 없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인지치료> 중
자기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서는 어떨까요? 심리학자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도 내부 귀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성격이 나쁘다거나 게을렀다는 식으로 원인을 찾는 것이죠. 하지만 동일한 행동을 두고서는 타인과 자신에게 다르게 귀인을 하기도 합니다. 이를 ‘행위자-관찰자 편향’이라고 하는데요, 자신이 행위자일 경우는 외부 귀인을, 관찰자일 경우는 내부 귀인을 합니다. 다른 사람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조심성이 없다.”라고 판단하고, 자신이 걸려 넘어지면 ”웬 돌부리냐!”라면서 화를 냅니다. 운전자들도 이런 오류를 자주 범합니다. 자신이 교통 법규를 위반하는 이유는 도로 현실과 다른 교통 규칙에서 찾고, 타인의 경우는 잘못된 운전 성향에서 찾습니다. 직장인들의 경우 자신이 진행한 프로젝트가 안 좋은 평가를 받으면 시간이나 회사의 지원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옆 동료의 프로젝트가 안 좋은 평가를 받으면 능력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지요.
혹시 비 오는 월요일 아침 지각을 면하기 위해 우산도 제대로 쓰지 않고 줄달음했지만 결국 지각했던 경험이 있나요? 우리는 동료에게 보통 이렇게 하소연합니다. “하필 출근길이 더 혼잡한 월요일인 데다가 비까지 오고, 몸이 피곤해서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지도 못했어. 오늘 지각은 정말 어쩔 수 없었어.” 하지만 비를 쫄딱 맞고 헐레벌떡 엘리베이터로 뛰어 들어온 우리를 보고 동료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친구 오늘도 지각했나 보네. 게으르다던 소문이 소문만은 아니군.’ 오해를 받아 억울한가요? 하지만 여러분도 반대의 입장에서 저렇게 생각하고 판단했을 텐데요.
<도대체 나는, 너는 왜 이럴까-귀인과 편향>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