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비즈(주) 편집자 권미경
청춘 자극제《아프니까, 청춘이다》,《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
청춘아 미안하다.
하지만, 그래도, 청춘아, 너는 도전해야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청춘을 주제로 한 강연과 토론회가 벌어지면서 "아픈 청춘"은 사회적인 담론이 되어가고 있다. 사실 우리 시대 청춘에 대해 따뜻하고 진지한 시각을 던진 것은 김난도 교수뿐만이 아니다. 박경철 의사와 안철수 교수는 모 프로그램에서 청춘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놓은 불온한 환경에서 분출할 데 없는 분노를 스스로의 무능함으로 돌리며 아파하는 청춘들에게 하는 고백이었다.
청춘이 아프지 않았던 때가 있었으랴. 모든 시절, 모든 청춘은 그저 "청춘이기에" 아프고 불안하고 어지러웠다. 하지만 요즘의 청춘들이 다시 화두가 된 데는 이 시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하고 흔들리기 때문이 아닐까. 자살을 생각하게 할 만큼 비싼 장학금, 친구도 동아리도 없는 삭막한 캠퍼스 생활, 교문 앞에 도사리고 있는 무한 경쟁 사회. 낭만도 도전도 없이 숨 막히게 굴러가는 청춘에게 기성세대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래도 낭만을 가지라고, 도전을 해보라고 말하는 것은 사치 같아서 미안하다는 말부터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난도 교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청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뜨거운 열망을 가지고 세상에 뛰어들었으면 좋겠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많은 시도와 실수를 해보았으면 좋겠어. 아직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목표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더라도 다양한 도전을 계속했으면 좋겠어. 누구보다도 뜨거운 열망을 가슴에 품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문이 아무리 많아도, 열지 않으면 그냥 벽이야. 되도록 많은 벽을 두들기고, 되도록 많은 문을 열어봐. 청춘이라는 보호막이 너의 실수를 용인해줄 거야."
아플수록, 깜깜할수록, 불빛을 찾아 떠나라
한때 청춘이란 다소 무모함이 용인되는 자유로움의 상징이었다. 가장 피 끓는 시기이며, 막막하고 두려운 미래에 비해 무서울 것이 없으며, 어떤 문이든 박차고 나가도 괜찮은 시기였다. 아직 젊다는 것이 면죄부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무전여행도, 세계일주도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과감히 행해졌다. 최근 10여년 만에 복간된 <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의 저자 우에무라 나오미도 그랬다. 그는 대학에서 산악부 활동을 하다가 홀로 등정에 도전해 스물아홉 살에 세계 최초 5대륙 최고봉에 등정하는 기록을 세웠다.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는 그 후 북극 12,000km를 1년 5개월 동안 홀로 완주한 이야기다. 책의 말머리 해제에서 고도원(아침편지)은 이렇게 말했다.
"가상의 세계에서 꿈만 꾸며 현실의 땅은 제대로 밟아보지도 못하고 세월을 허비하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나오미는 실종된 모험심과 도전정신의 표상이다."
그의 말대로 청춘의 심볼이었던 모험과 도전은 이제 실종되었다. 요즘의 청춘에게 문을 박차고 나간다는 것은 무모한 모험이고 무리한 도전이다. 박차고 나간 문 뒤로 무엇이 펼쳐질까? 하는 두려움이 모든 것을 제지한다. 잘못된 문이라면 그것은 경험이 아니라 시간 낭비로 치부된다. 실패로 인한 손실과 그로 인해 경쟁 대열에서 낙오되는 것에 대한 방어 때문에 섣불리 문을 열어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은 계속 도전에 대해 자극 받는다. 안철수 교수는 한 매체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세상이 힘들지만 젊을 때일수록 도전정신을 가지고 한번쯤은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자기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게 좋겠다."라고 했다. 수많은 기회의 길이 뻗어 있는 청춘에게 도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가능성의 문을 잠그는 일이기 때문이다. 길을 나서야 스스로에 대해서 오롯하게 돌아볼 수 있고,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처럼 도전 끝에 희망의 불빛도 발견할 수 있다. 닫힌 문 안에서는 평온한 어둠, 빈곤한 불빛에 잠식되고 마는 것이다.
도전하는 모든 청춘은 늘 아프고 불안하다.
하지만 기억하라, 그대는 단단해질 것이다!
그저 도전하는 것만이 해답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표지에 쓰인 "시작하는 모든 존재는 늘 아프고 불안하다. 하지만 기억하라, 그대는 눈부시게 아름답다!"라는 말처럼 단지 청춘이기에 아름답다는 것에서 끝나기에는 너무 제자리걸음이다. 청춘의 존재를 아름답게 보고 괜찮다고 위안을 얻는 것으로 한 번 일렁이고 만다면 의미가 없다.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처럼 도전 앞에 머뭇거리는 청춘들의 손을 잡아끌어 한 발짝 내딛게 하고, 각자의 희망의 불빛을 찾게 자극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청춘의 마음을 열고 다독여 주었다면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처럼 청춘의 가슴 속에 뜨거운 불을 지피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이렇게 바꾸어 말하고 싶다. "도전하는 모든 청춘은 단단해질 것이다!"라고.
우에무라 나오미는 12,000km 여행 끝에서 마지막 불빛을 발견하고 벌써 다음 길을 꿈꾼다. 그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도전하는 자에게는 뜨거운 불빛이 언제 어디서든 기다리고 있으니까. 더구나 청춘 앞에는 누구보다 많은 불빛이 발견되기를 기다리며 반짝이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