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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밍은 상상이다 - 휴먼 인터페이스와 영혼의 인터페이스

한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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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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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BIT

11,352

제공 : 한빛 네트워크
저자 : 임백준
출처 : 프로그래밍은 상상이다 제5장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사회 중에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를 보면 경찰들이 투명한 유리와 같은 대형 컴퓨터 화면을 보며 일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이 컴퓨터를 조작할 때는 특별한 장갑을 낀 손을 허공으로 뻗어 마치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듯이 분주하게 손을 놀린다. 오늘의 시각으로 보자면 이런 모습은 상상에 불과한 설정이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이 2054년 무렵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50년 전인 2004년에 사용되고 있는 키보드, 마우스, 그리고 17인치 평면 모니터와 같은‘고전적인’입출력 장치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래를 묘사하는 공상 과학 영화를 감상하는 맛 중의 하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상상하는 능력의 깊이와 설득력이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블레이드 러너>, <브라질>과 같은 작품들은 20세기의 SF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그런데 컴퓨터의 사용이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점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인지, 영화에 등장하는 컴퓨터 화면은 모두 CRT 방식의 작은 모니터이다. 이에 반해서 2002년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투명하고 큼직한 평면화면을 상상했다. 이것은 상상력의 차이라기보다는, 점차 대형화되고 평면화되어 가는 현대 모니터의 추세가 20년 전의 영화에 반영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얼마 전 일간 신문에‘비에터’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HMD(Head Mounted Display) 제품은 천상을 배회하던 영화적 상상력이 지상으로 내려와 육화된 것에 필적할 만 했다. 안경처럼 생긴 HMD를 (그저 안경을 착용하듯) 장착하면 눈앞에 80인치 크기의 대형 스크린이 펼쳐진다는 설명을 듣고 보면 그 어떤 영화적 상상력도 무색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HMD 기술은 이미 군사적인 용도로 널리 보급되어 있는 현실이라는 점에서 막연한 상상과 구별된다.

오늘날 미국의 전자 제품 시장에서는 벽에 걸거나 맵시 있게 세워 놓을 수 있는‘플라즈마(plasma)’TV가 없어서 팔지 못할 만큼 잘 팔리고 있다. 값이 훨씬 싼‘프로젝션(projection)’TV보다 화질이 더 나을 것이 없는 경우에조차 ‘플라즈마’TV가 더 잘 팔리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TV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신분(status)을 드러내는 상징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신분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집착은 간단하지가 않아서 이러다가는 심지어 화면이 나오지 않는 플라즈마 TV의 껍데기만 파는 보급형 모델이 나올 것이라는 농담마저 나올 지경이다.

컴퓨터나 TV와 같이 일종의 정보를 입출력하는 장치는 그것이 상상력이든, 군사적 목적이든, 아니면 신분을 드러내는 상징이든 상관없이, 모든 동기와 자극을 통해서 끊임없이 개선되고, 발전해 왔다. 미디어 비평의 대가인 마샬 맥루한은 오래 전에 (컴퓨터와 같은) 전자 회로가 인간 중추 신경의 확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키보드라는 딱딱한 입력 장치를 뛰어 넘는 마우스라는 부드러운 입력 장치가 처음으로 개발되었을 때 맥루한과 입장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사람의 손바닥과 마우스의 몸통이 서로의 체온을 따뜻하게 교감하는데 깊이 주목했다.

컴퓨터, TV, 전화, 냉장고, 세탁기, 전기밥솥, 휴대폰, 전자렌지, 오븐 등과 같은 수많은 전자 회로들이 별도로 내장된 칩(chip)과 무선 통신을 통해서 하나의 컴퓨터 네트워크로 묶이는 것은 더 이상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인간이 이러한 컴퓨터 네트워크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입력 장치와 출력 장치는 더욱 정교해지고, 가벼워지면서 마침내 맥루한이 지적한 것처럼 차츰 인간 신체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휴대폰은 이미 인간 신체의 일부라고 보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이다.) 사람이 컴퓨터와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을 의미하는‘휴먼 인터페이스(human interface)’는 이러한 사회적 발전의 맥락에서 점차 중요한 의미를 획득하고 있는 공학의 한 분야이다. 그러나 사람과 컴퓨터 사이의 의사소통이 과거에 비해서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는 그 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의사소통의 길이 더 많이 열리고 있음에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집에 어떤 TV를 가지고 있는가보다 그 TV로 어떤 내용을 보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얼마나 좋은 컴퓨터를 가지고 있는지, 혹은 컴퓨터를 얼마나 잘 하는지 보다 그 컴퓨터로 무엇을 하는지가 더 중요한 질문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TV 앞이든, 아니면 컴퓨터 앞이든, 결국은 그 길이 사람들을 향해서 통해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 길이 아무런 의식이 없는 기계에 불과한 컴퓨터에게 뚫린 길이고,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의 모습이 은폐되어 익명성이 보장되었다고 착각하는 순간 발생하는 것이 공동체로부터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뒤틀린 개인주의이고, 은밀한 욕망의 발현이다. 그 예가 컴퓨터 통신을 이용한 성매매이며, 자살의 부추김이며, 게시판에서의 무책임한 욕설이며,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몰카와 유언비어의 유포이다.

컴퓨터의 모니터와, 키보드와, 마우스가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을 향해서 뚫려 있는 길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공동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촌스럽게 여기는 경박한 의식과, 건강한 문화와 가볍고 충동적인 소비를 구분하지 못하는 박약한 의식이 재생산되는 현실과 관련이 있다. 휴먼 인터페이스는 날이 갈수록 발전을 거듭하여, 이제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와 같은‘오케스트라 연주’가 더 이상 상상에 머무르지 않을 날도 멀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영혼의 각성과 성숙이 발을 맞추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밝지 않을 것이다.

컴퓨터 네트워크와 카메라를 이용해서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며 돈을 받는 영혼을 생각해 보자. 그 속살을 보기 위해 돈을 내고 욕망을 태우며 밤을 지새우는 젊은 영혼들을 생각해 보자. 그래서 사람과 컴퓨터의 의사소통을 연구하는 휴먼 인터페이스보다 사람과 사람의 영혼이 건강하게 소통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영혼의 인터페이스가 언제나 더욱 절박하고 근본적인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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