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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밍은 상상이다 - 디지털 시대의 참된 권력! 개인

한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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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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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BIT

10,973

제공 : 한빛 네트워크
저자 : 임백준
출처 : 프로그래밍은 상상이다 제5장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사회 중에서"

MIT 미디어랩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는 90년대 중반에 소개된『디지털이다(Being Degital)』(커뮤니케이션북스, 2005)라는 책을 통해서‘디지털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책에서 그는 아날로그적인 원자(atom)의 시대가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digital)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현상과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 무엇이든 장수하기가 어려운 요즘 세태를 생각해 보면 그가 설명한 디지털 시대의 문화적 함의가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5월 7일 서울에서 열린‘디지털포럼 2004’에 참석하기 위해서 방한했던 네그로폰테 교수는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대한 많은 화두를 던지고 돌아갔다. 그가 발언한 내용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권능화(empowerment)’라는 말로 표현되는‘개인화’이다. 이 개인화의 의미는 아날로그의 세계에서는 개인이 대중 매체가 제공하는 정보를 주는 대로 받아먹 을 수밖에 없었지만, 디지털 세계에서는 정보를 스스로 찾아 먹는 주체로 거듭 태어난다는 말로 압축된다.

광고 회사인 제일기획에서 17세에서 39세의 젊은 세대를‘P세대’, 그리고 46세에서 64세까지의 기성세대를‘와인세대’라고 규정하는 보고서를 발표하여 작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 보고서는 두 세대의 문화적 특성과 성향을 설명했는데, P세대의 90%가 인터넷을 사용하고, 그 중 80%가 인터넷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말했다는 부분이 흥미를 끌었다. 인터넷 사용은 주로 메신저, 이메일, 채팅, 게시판 등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차지하는데, 상품을 구입하기 위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나 신문 사이트를 읽는 일도 많은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다.

인터넷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말하는 P세대의 59%가 기존의 대중매체를 정보라기보다는 주로 오락이나 재미를 위해서 이용한다는 분석은 더욱 흥미로웠다. 말하자면 아날로그 시대를 주름잡던 신문이나 방송 같은 매스미디어의 주역들은 이제 개인이라는 정보 주체에게 단순한 여흥을 제공하는 매체로 전락하고,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서 권좌에 등극한 인터넷은 정보를 제공해 주는 핵심 기제가 된 셈이다. 앞서 말한 네그로폰테의 권능화, 혹은 개인화는 이러한 매체의 중심 이동과 대단히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개인이 세상을 내다보는 유일한 창문이 신문과 방송밖에 없었던 시대에는 그 창문의 색상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권력은 대중을 손쉽게 통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은 권력에 의해서 덧칠된 창문 이외에 여러 개의 다른 창문을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개인을 방에서 꺼내서‘세상 속으로’던지는 의미를 가졌기 때문에 창문의 색상을 조절하며 희희낙락하던 권력을 당황케 했다. 개인은 더 이상 신문과 방송이 전달하는 정보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았으며 스스로 공동체를 형성하여 자기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말하자면 정보의 공급과 소비의 과정 자체에 개인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권력의 이동, 즉 권능화가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네그로폰테 교수는‘디지털 전도사’라는 별명에 걸맞게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개인은 진정으로 권능화되었고, 네그로폰테 교수의 진단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 것일까.



위의 보고서를 소개했던 신문 기사는 P세대의 특징을 거론하면서“화장품을 구입하기 위해서 화장품 사이트를 4시간이나 뒤졌다”라는 어느 여성의 말을 인용하였다. 예전 같으면 신문이나 방송에서 내보내는 화장품 광고가 모든 정보의 원천이었다면 이제 이 여성은 스스로 주체가 되어 인터넷에서 정보를 사냥했다. 그녀는 과연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는 권능화된 주체로 거듭 태어난 것일까.

대통령 탄핵, 이라크 파병, 정치인의 뇌물 수수, 17대 총선과 같은 정치적 주제에서 이승연 사진집이나 연예인 누드 사진 같은 문화적 주제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쉽게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고, 토론하고, 논쟁하고, 반박한다. 편이 갈리고, 서로 딱지를 붙이고, 욕설을 퍼붓고, 적개심을 드러낸다. 깊은 사색을 통해서 스스로의 의견을 정립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인터넷을 검색 해서 아군의 이야기와 적군의 이야기를 순식간에 갈무리하여 전력을 가다듬는다. 정체가 불분명한 사람을 만나면 속 깊은 대화를 생략하고 단번에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찬성인가, 반대인가. 당신은 아군인가, 적군인가.

그래서‘디지털 전도사’가 말하는 권능화와 개인화의 진단이 제대로 들어맞는 곳은 어쩌면‘상품시장’과‘소비’의 영역일 뿐일지도 모른다. 화장품 사이트를 4시간이나 뒤졌다는 여성의 사례는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서 상품을 소비하는 개인의 행동양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 개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영혼이 주체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는 보여주지 않는다.

스포츠 신문을 제외한 모든 활자를 등한시하며 다만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서 세상을 순식간에 바라보려고 질주하는 인터넷 세대의 모습도 다를 바 없다. 그들이 형성하는 담론의 형식적인 파괴력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지만 그 형식이 담아야 하는 참된 고민의 량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스스로 깊이 사색하여 사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들은 언어를 통해서 타인의 영혼을 짓밟고 능멸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기편의 깃발을 사수하기 위한 위대한 실천으로 착각하기까지 한다.

네그로폰테 교수가 말하는 개인화와 권능화라는 화두의 참된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서 많은 권력이 개인으로 이동하고 있지만, 그 권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권력을 담지하는 우리의 영혼은 과연 참된 주체의 모습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는지 생각할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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