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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모바일

Are you a programmer?

한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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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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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BIT

8,925

저자: 『행복한 프로그래밍: 컴퓨터 프로그래밍 미학 오디세이』의 저자 임백준

마지막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나서 수년간 없었던 몸살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몸살을 앓더라도 회사를 빼먹을 만큼 심했던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이불을 펴고 그 속에서 이틀 동안을 진드기처럼 꾸물거렸다. 책을 쓰는 동안에는 흥에 겨워 신나게 썼는데 첫 책이라는 부담감이 알게 모르게 몸을 긴장시키고 있었나 보다.

물론 책을 쓰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낮에는 회사에서 복잡한 프로그래밍을 하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책을 쓰는 일이 육체적으로 힘들 때가 종종 있었다. 특히 회사에서 요구하는 노동 강도가 (최근의 심각한 불황에 따른 대량 해고로 인해서) 점점 강해지면서 책을 쓸 수 있는 시간은 그에 반비례해서 급격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글을 쓰는 일은 대체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 만큼이나 즐겁고 유쾌한 놀이에 가까웠기에 내겐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첫경험"이 되었다.

책의 내용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던 것은 작년 12월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올해 3월까지 원고를 집필작업을 했는데, 모두 쓰고 나서 보니 부족한 곳이 많아서 원고를 검토하다가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원고를 떠나보내는 순간이 되자 마치 사랑하던 연인을 떠나보내는 것처럼 섭섭하고 허전한 감정을 느끼게 되어 놀랐다.


행복한 프로그래밍: 컴퓨터 프로그래밍 미학 오디세이

참고 도서

행복한 프로그래밍: 컴퓨터 프로그래밍 미학 오디세이
임백준




주말 저녁을 이용해서 미국 시간으로 어제인 5월 15일에 개봉한 영화 "매트릭스 2"를 보고 돌아왔다. (이 책이 출판된 날도 5월 15일이다.) 여러 번 반복해서 보아도 지루하지 않았던 전편의 아기자기하고 신비로운 이야기 구조는 다소 느슨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액션 장면은 소문대로 볼만했다. 특히 매트릭스 시리즈는 문자 그대로 "프로그래밍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프로그래머의 입장에서는 여러 각도에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닐 수 없었다. 오늘 본 내용 중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 중의 하나는 주인공인 키아누 리브스가 오라클에게 자신을 인도하는 동양인 무사를 향해 다음과 같이 묻는 장면이었다.
"Are you a programmer? (당신은 프로그래머입니까?)"
매트릭스의 세계에서는 신비한 능력을 가졌거나 높은 무공을 갖추고 있는 사람은 일단 프로그래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여기에서 "프로그래머"의 의미는 각별하다. 영화에서 나온 동양인 무사의 경우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신비한 통로를 찾아가는 능력과 함께 키아누 리브스와 겨루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높은 수준의 무술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지만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다. 현실 속에서 프로그래머는 대부분 주어진 노동을 하고 월급을 받아서 생활을 하는 평범한 존재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프로그래밍이라는 노동은 프로그래머에게 있어서는 환상적인 열중과 몰입의 대상이기 때문에 프로그래머들은 그 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행복과 쾌감을 경험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프로그래밍은 프로그래머들에게 "매트릭스"와 다를 바 없는 존재인 것이다. 프로그래밍과 매트릭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실제로 맞닿아 있기 때문에 영화 "매트릭스"는 프로그래머에게 일반인들과는 다른 독특한 체험과 상상을 부여해주고 있다. 비록 부족한 점이 많지만 필자는 『행복한 프로그래밍』에서 그러한 경계선 위에 놓여 있는 프로그래머의 땀과 눈물, 그리고 행복과 쾌감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한빛미디어에서 소중한 기회를 마련해 주었으나 역량이 부족하여 일단 이 책에서는 논의의 초점을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래밍 속에서 느끼는 "행복"의 근거를 약간은 기술적인 이야기를 섞어서 부각시키는 쪽으로 집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욕심을 절제하지 못하고 다른 이야기를 집적거리다가 이야기를 산만하게 만든 부분이 더러 있는 것 같아서 부끄럽다.

소설가 김영하의 산문집 『포스트 잇』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등산 안내서, 여행 가이드북, 컴퓨터 매뉴얼, 농사교본을 쓰는 저자들이 단지 그런 책을 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소설가나 철학자보다 폄하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중략)... 이들은 진심으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세상과 공유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이 말에 적극 공감하였고 따라서 "컴퓨터 매뉴얼"을 쓰는 사람들이 진실로 다른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기를 진지하게 바라는 사람이기를 희망한다. 프로그래머들은 노동자이지만 "창조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회에 기여할 바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프로그래머들의 마음이 따뜻해지면 세상이 따뜻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부족한 이 책이 프로그래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래볼 뿐이다.

2003년 5월 17일 뉴저지에서 임백준


참고
임백준 컬럼 시리즈: 인류 최초의 로그인외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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